처음 2-3월에 시험 삼아 토플을 본 이후로 세 번 더 토플을 보게 되면서, 매 시험마다 '다음엔 어떻게 해야되겠다'하는 노하우 같은 게 생겼다. 시험장 선택부터 도착시간, 시간관리까지 내 컨디션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만한 요소가 꽤 많았다.
토플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시험장부터 잘 골라야했다.
토플은 무슨 수능처럼 모두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보는 게 아니라, 누구는 큰 소리로 스피킹을 하고 있고 누구는 시험 끝나서 짐 챙기고 있고, 누구는 막 시험 보러 들어오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보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토플 시험장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후술)
안그래도 시험장이 집중 안되는 세팅인데, 여기에 다른 혼란스러운 요소까지 더해진다면 더 안될 것 같았다. 시험 후기를 살펴보면, 시험장에 따라 어디는 시험감독관들이 필기용 종이를 짜게 주고, 어디는 자리와 자리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필기하기가 너무 좁고 - 리스닝과 스피킹 중 필기는 필수다 - , 어디는 컴퓨터 해상도가 안좋아서 글씨가 잘 안보이고 하는 식으로 부가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시험 자체도 어려운데 이런 방해요소들까지 있으면 안된다. 그래서 시험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참고한 사이트는 「고우해커스 토플시험장 Q&A」였다 www.gohackers.com/?c=toefl/toefl_info/toefl_school. 시험장소가 서울 안이기만 하다면 강남-강북 가리지 않고 시험장 후기를 다 읽었다. 시험장 컨디션이 좋으면 조금 멀더라도 갈 마음이 있었다. 수업 중에 강사선생님이 추천한 시험장도 적어두었다가 시험장 고르는 데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렇게 걸러야 할 시험장, 갈 만한 시험장을 추려서 내가 선택한 곳은 광화문 조선닷컴교육센터.
다음으로 한 일은 미리 시험 3회치를 예약하는 것이었다.
난 주중에는 회사를 가야했고, 주말에는 토플 학원을 가야했다. 그래서 토플 수업 한달치가 끝난 후 그 다음달 수업이 시작하기 전 딱 1주일 공백기간 중에 주말인 날을 골라, 그날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토플 학원을 가는 대신 시험을 볼까도 생각했지만, 안그래도 진도빠른 주말 수업을 한 번이라도 빠지면 토플 점수 올리는 데 타격이 컸다. 당시 생각으로 시험을 경험 하기보다 실력을 쌓는 게 더 급했다.
내 목표는 8월 말까지 토플 학원을 다니고 8월 말-9월 초에 마지막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토플에 발을 들일 무렵이었는데, "내가 강한 과목-약한 과목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빠른 날에 한번 시험을 보자. 실력을 좀 쌓은 뒤 8월 말-9월 초에 마지막으로 시험을 보자. 만약 그때까지도 토플이 완성 안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2주 후에 한번 더 시험을 보자 (토플 시험은 2주 간격으로만 예약할 수 있고, 2주 안에 시험을 2번 볼 수는 없기 때문. 아예 인터넷 상으로 예약 자체가 막혀있다)."
토플 시험예약을 어영부영 미루다가 며칠 안에 예약이 다 차버리는 경우를 경험했었다. 그래서 아예 일찌감치 3회치를 한꺼번에 예약하기로 했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 + ETS 사이트에 나오는 조선닷컴교육센터의 스케줄 + 주말이면서 내 시험 계획에 맞는 날을 세 날 골랐다. 아마 6월에 한 번, 9월 초에 한 번, 9월 중순에 한 번이었을 것이다. 9월 중순에 볼 마지막 시험은, 만약 9월 초에 보는 시험을 잘 본다면 취소를 할 요량이었으므로, 취소할 때 최대한 환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날을 달력에 체크해놓았다. (환불 규정은 여기 www.ets.org/ko/toefl/test-takers/ibt/take/fees/policies/korea)
시험장에는 무조건 일찍 도착해야 한다.
자, 시험 예약을 했으면 시험날 맞춰서 시험장에 가야겠죠?
ETS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입실시간은 10시였다. 그래서 9:45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대기실에 나를 포함해서 3명 밖에 없었다. 아니, 그 많다던 수험생들은 다 어디갔지? 10시에 시험 시작이면 바글바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험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실제 시험장에 들어갔더니 이미 사람들이 빼곡이 앉아 시험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리스닝을 하고 있는지 헤드폰을 끼고 있고, 어떤 사람은 쉬는 시간인지 시험을 끝낸 건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10시라는 입실시각은 입실 마감시각이라는 것을.
비좁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앉으니, 옆 사람 눈치도 보이고 늦게 왔다는 생각에 조바심도 났다. 첫 과목인 리딩을 하는 중에 주위에서 스피킹하는 소리가 자꾸 들려서 집중이 안됐다. 답을 클릭해야 하는데 손으로 귀도 막아야 하겠고, 미리 스피킹 주제를 듣고 싶어지는 바람에 주위 사람 스피킹 하는 내용도 듣고 그랬다. 게다가 오후에 스피킹 하는 중이었나, 이제 사람들이 시험을 다 마치고 퇴실해서 방 안에 나와 몇 명만 덩그러니 남게 되자 더더욱 조급해졌다.
토플은 리딩 → 리스닝 → 10분 쉬는 시간 → 스피킹 → 라이팅 순으로 진행된다. 시험장에서는 왜인지 시간차를 두고 수험생을 입실시킨다. 그래서 먼저 입실한 사람이 리딩, 리스닝, 쉬는 시간을 끝내고 스피킹을 하고 있을 때, 늦게 입실한 사람이 리딩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발생한다. 내가 리딩이나 리스닝하고 있을 때 먼저 시험을 시작한 옆 사람이 스피킹 하는 것을 듣느니, 내가 시험장에서 제일 먼저 시험을 시작해서 그 방에서 제일 먼저 스피킹 스타트를 끊는 것이 낫다.
다음 시험에는 무조건 일찍 도착해서 첫번째로 입실해서 첫번째로 시험을 시작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다만 내가 선택한 시험장의 경우, 선착순 입실이 아니라 선착순 번호표 셀렉이다. 예를 들어 그 날 시험볼 사람이 100명이라면, 대기실에는 미리 1번부터 100번까지 번호표가 칠판에 벨크로로 붙여져 있다. 이 번호는 입실순서를 의미한다. 만약 일찍 입실해서 일찍 시험을 시작하고 싶다면 낮은 숫자 (1번 같은) 번호표를 떼서 갖고 있으면 된다. 늦게 입실해서 늦게 시험을 시작하고 싶다면 높은 숫자 (100번 같은) 번호표를 떼서 갖고 있으면 된다.
그래서 다음에 시험 볼 때는 8:45쯤 도착해서 거의 1등으로 시험을 시작했다. 사실은 이미 누가 1번을 가져가버려서, 2번인가 3번으로 시작했다. 마음이 편했고 여유도 있었다. 리딩이나 리스닝할 때 누구도 스피킹을 하고 있지 않았다. 시험 도중에 새로 온 사람이 내 옆에 앉았는데 그 사람이 시험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내가 스피킹을 시작해버려서 조금 미안했을 뿐이다. 그렇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본 시험에서 컨디션이 제일 좋았을 뿐 아니라 성적도 가장 높게 나왔다.
시험 중 쉴 수 있는 시간에는 반드시 쉰다.
토플은 거의 4시간 동안 스트레이트로 진행되는 힘든 시험이다. 젊은이들이야 한 자리에 앉아서 스트레이트로 4시간 시험보는 게 쉬울지 몰라도 나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냐... 워낙 엄격하게 시험이 관리되기 때문에, 리딩-리스닝 VS. 스피킹-라이팅 시험 사이에 10분 쉬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 외에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만 보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필기용 종이가 더 필요하면 손을 들어 알려야지, 수험생이 직접 일어나 종이를 가지러 나가는 것은 금지된다)
그래서 최대한 쉬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10분 동안 쉬면서 뭔가를 먹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시험 중간 중간 스크린에 뜨는 지시사항을 읽는 시간에도 쉬어야 한다. 각 과목 시험이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화면에 해당 과목에 관한 지시사항이 뜬다. 이 지시사항은 5분 동안 화면에 떠있다. 수험생은 NEXT 버튼을 눌러 5분이 끝나기 전에 바로 시험으로 돌입할 수도 있고, NEXT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냥 5분 동안 계속 기다릴 수도 있다. 바로 그 5분 동안 NEXT 버튼을 누르지 말고 full로 쉬라는 것이다.
리딩과 스피킹의 지시사항에서까지 5분을 쉴 필요는 없지만, 중간 중간에 끼어있는 리스닝과 라이팅 지시사항에서는 꼭 쉬기 바란다. 그냥 5분 동안 눈 감고 명상을 하거나 아무 생각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 그렇게 5분 쉬는 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다.
나는 처음 시험을 볼 때에는 늦게 도착하기도 했고, 시험문제는 답도 모르겠고 해서 빨리 시험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NEXT 버튼을 다 눌렀다. 그랬더니 본 시험 때 집중력이 훅훅 떨어지고 안그래도 긴 시험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다음 시험부터는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5분을 나만의 쉬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확실히 시험 중에 집중력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었다. 훨씬 덜 지치기도 했고 시험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토플 실전은 연습과는 정말 다르다. 주위 분위기, 매체, 쉬는 시간, 시스템 모두 연습 때보다 더 열악하다. 그래서 미리 실전 환경을 파악하고 어떻게 그 안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뽑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시험장 선택부터 도착시간, 쉬는 시간까지 미리 계획해야 한다. 그게 모두 합쳐져서 최고의 토플 성적표를 만든다.
그럼 공부 열심히 하시고 꼭 시험 잘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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