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법무법인에서 4년째 어쏘로 일하고 있는 공남변 변호사.
그는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공변의 일주일을 통해 로펌 변호사들의 점심시간을 들여다본다.
월요일
월요일 아침은 항상 바쁘다. 출근하자마자 나를 찾는 파트너 변호사님들과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의뢰인 전화. 정신이 없다. 주말에 미뤄뒀던 이메일에도 답장을 하다보면 오전 시간이 다 간다.
11:30이 되었다. 여느 변호사 사무실과 같이, 우리 회사에서도 변호사들은 점심시간이 자유롭다. 한 11:30부터 1:30까지는 점심 먹으러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나와 동료들은 식당에 사람이 몰리기 전에 11:30쯤 사무실을 나간다.
월요일이라 바쁘기 때문에 빨리 먹고 나올 수 있는 구내식당을 가기로 했다. 회사 구내식당에는 양식, 한식, 특식 메뉴가 있는데 항상 뭘 먹을지가 고민이다. 일단 메뉴를 체크.
다들 각자 식판을 들고 와서 흡입했다. 우리 회사는 점심 식대로 11,000원이 지원된다. 구내식당에서 메뉴에 따라 5,000 ~ 7,000원 정도를 썼으니, 남은 돈으로 커피를 마시러 스벅을 간다.
화요일
크게 급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밀린 일을 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졌다. 상대방 변호사가 아침에 갑자기 서면을 제출한 것이다. 내일이 당장 재판인데 오늘 서면을 내다니.
내일 있을 재판의 사건은 형제 사이에 유산 가지고 다투는 사건이다. 벌써 1년 넘게 서로 격렬하게 다투어 왔다. 형제 간 의는 벌써 상한지 오래고, 나와 파트너 변호사님도 중간에서 감정받이 하느라 많이 지쳤다. 내일에야 말로 사건이 종결되길 기대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서면을 제출하면 종결이 안될 수도.
오늘 안에 우리 쪽도 반박서면을 내야 그나마 내일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빨리 짧게 써서 제출하기로 했다. 지금은 아침 10시. 오후 1-2시 정도에는 초안을 파트너 변호사님께 드려서 검토하시게 해야 오늘 업무시간 안에 안전하게 제출할 수 있다.
급하게 기록을 다시 보면서 반박서면을 쓰다보니 벌써 12시. 나가서 김밥과 콜라를 사와야겠다. 지금 식사하러 나가는 내 비서, 김대리님에게 부탁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대리님께 부탁하면 대리님 식사 다 끝나고 돌아오실 때 사와 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기다리려니 너무 배가 고파.
김대리님이 누군지는 여기에.
김밥과 콜라를 함께 먹게 된 건, 고시공부할 때 공부한 '김밥과 콜라 사건' 때문이다. 조폭이 다른 조폭을 죽이려고 칼로 찔렀는데 피해 조폭이 용케 살아남았다. 그러나 피해 조폭이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중, 의사의 지시를 어기고 김밥과 콜라를 함부로 먹어 급성 신부전증에 걸려 그만 사망한 사건이다. (93도3612)
어이가 없기도 하고 피해 조폭이 안된 마음도 들었지만, 얼마나 맛있으면 생사의 기로에서 먹었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한번 먹어보았다. 근데 맛있는 거다! 그때부터 김밥과 콜라는 내 최애 조합이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 먹으면서 정신 없이 서면을 써서 결국 파트너 변호사님께 보냈다. 휴식 없이 초긴장 상태로 계속 일했더니 힘이 쭉 빠진다. 검토하시는 동안 좀 쉬러 나갔다 와야지.
수요일
그 형제 사건 재판이 동부지방법원에서 11시에 있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했다가 동부지법으로 가는 건 동선 상 시간낭비이므로 곧장 법원으로 출근했다. 파트너 변호사님보다 늦게 도착하면 좀 민망하기도 하고 예의가 없는 것 같아서, 일부러 좀 일찍 재판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다.
다행히 사건은 종결되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파트너 변호사님과 법정을 나왔다. 시각은 12시. 회사로 복귀하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므로, 이런 경우는 보통 법원 근처에서 식사를 한다.
목요일
오늘은 회사에서 점심 판례 세미나가 있다. 어쏘들이 돌아가면서 자기가 맡았던 사건이나 새로 나온 판례를 발표하는 자리다. 오늘은 내 차례. 1년차때는 엄청 긴장했는데, 4년차쯤 된 지금은 별로 긴장되지 않는다.
비서인 김대리님에게 미리 빔 프로젝터를 설치해달라고 요청 드렸다. 내가 발표자이므로, 나를 담당하는 비서 김대리님이 세미나실에 내 PPT를 미리 띄워놓고 도시락도 자리마다 세팅해놓으실 것이다.
점심 세미나를 할 때는 주로 도시락을 먹는다. 어떤 변호사들은 맛 없고 부실하다고 불평하는데, 난 사실 좋아한다. 입맛 당기게 만든 건데 맛이 없을 수가 있나~ 되려 평소보다 더 많이 먹게 된다. 오늘도 기대된다. 다른 변호사들이 식사 하는 동안 내가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표가 끝나야 먹게 될 테지만.
1년차 때 도시락을 봤을 때는 엄청 비싼 건 줄 알았다. 고급스러워 보이고 양도 많고 맛있어서.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지급되는 식대 11,000원에 딱 맞춘 거였다. 제일 자주 나오는 불고기 도시락이 10,900원이랬나, 10,500원이랬나... 좀 웃기긴 했지만 불만은 없다.
1-2년차 때는 카페 마마스 같은 데서 샌드위치를 단체 주문해서 세미나 때 먹기도 했던 것 같은데, 파트너 변호사님들께서 별로 안좋아하셔서 도시락으로 추세가 바뀐 것 같다. 아마 여성 변호사님들은 샌드위치를 더 선호했던 것 같기도 하고.
금요일
새로 오신 파트너 변호사님께서 나를 비롯해서 몇몇 어쏘들을 부르셨다. 점심 사주시겠다고.
평소에 친하던 파트너 변호사님이 밥 사주시는 건 언제나 좋다. 불편하지도 않고, 나를 예뻐하셔서 사주시는 거니까. 그럴 때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새로 오셨거나, 같이 일해본 적 없는 분이 갑자기 식사자리에 부르신다,면 일단 반갑지는 않다. 나에게 일을 시키려고 부르신 것이므로.
아무리 파트너 변호사님이라고 해도, 밥 한번 같이 안 먹어본 어쏘에게 갑자기 일 시키기는 어려우신가보다. 어쏘들 사이에 우리들만의 룰이 있듯이, 파트너 사이에서도 룰이 있는 것 같다. 잘 모르는 어쏘에게 일을 시키려면 일단 밥 사주면서 인사부터 하라,는 식으로.
로펌 안에서도 서로 합이 잘 맞는 팟변-어쏘가 있고, 서로 잘 안맞는 팟변-어쏘가 있다. 몇년 동안 일하다 보면, 서로 합이 잘 맞는 조합끼리 일하는 걸로 관계가 굳어진다. 하지만 매년 팟변이 새로 들어오시면 오늘처럼 식사를 하면서 일을 시킬 어쏘를 탐색하신다. 걸린 어쏘에게는 함께 일할 팟변이 추가되는 거지 뭐.
그래서 어쏘들 입장에서는 오늘 같은 식사자리는 마냥 좋지가 않다. 팟변이 "요새 일 많아요?" 라고 물으시면 다들 표정이 굳어지면서 서로 눈치만 본다. 일 많지 않으면 일 시키겠다는 뜻이니까. 난 '저는 그럭저럭...' 이렇게 대답하고 마는데,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
팟변이 내 동료를 맘에 들어하신 것 같다. 맘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동료에게 미안하다.
나도 나와 잘 맞는 파트너 변호사님하고만 일하는 게 편하고 익숙하다. 다른 분도 겪어보고 하면서 나를 더 단련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일도 이미 많고 항상 피곤한데, 일단은 새로운 일을 받고 싶지 않은 게 또 솔직한 심정이다.
이렇게 금요일 오후가 된다. 다음주에는 김밥과 콜라를 먹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별 탈 없이 점심 먹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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