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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이 궁금해

로펌에 있는 특이한 점심 문화

우리나라 로펌에는 점심총무라는 개념이 있다.

 

검찰과 법원에도 '밥 총무'라는 유사한 개념이 있는데, 아마도 검찰과 법원에서 옷 벗고 나온 변호사들이 로펌으로 유입되면서 그 문화까지 가지고 온 게 아닌가 싶다.

 

로펌 변호사는 파트너 아니면 어쏘다. 

점심총무가 뭔지를 이해하려면, 로펌이 어떤 구조인지 알면 좋다. 

 

 

우리나라 로펌은 전형적으로 이런 조직구조다.

 

 

로펌에는, 크게 (1) 변호사, (2) 변호사 아닌 프로, (3) 직원이 있다. 변호사는 다시 파트너와 어쏘(Associate attorney의 준말)로 나누어진다. 다른 직종과는 달리 부장, 차장, 과장 ... 같은 직급이 없이 그냥 파트너 아니면 어쏘다.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 하이에나. 주지훈은 송&김이라는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고, 전석호는 같은 로펌에 다니는 어쏘다. 김혜수는 로펌이 아니라 1인 변호사사무실을 운영하기 때문에 따로 파트너/어쏘 개념 없이 그냥 변호사로 소개되어 있다. (굳이 따지면 1인 파트너라 할 수 있다)

 

 

관계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파트너와 어쏘는 상하관계이다. 어쏘 생활 6-7년 정도를 하고 그 로펌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으면 파트너가 된다. 

 

파트너들 점심 챙겨드려야지.

나이 지긋하신 파트너 변호사님이 점심 시간에 홀로 약속 없이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나이 어린 어쏘들이나 비서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재밌게 떠들면서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 아마도 그 파트너 변호사님은 좀 창피하기도 하고 혼밥하는 걸 들키고 싶어하지 않겠죠? 

 

그래서 생긴 게 점심총무다. 점심총무의 본질은 어르신들 점심 홀로 드시지 않게 점심모임을 꾸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혼밥은 서러우니까요.

 

 

점심총무는 1년차 어쏘 변호사가 번갈아가며 맡는다. 점심총무가 하는 일은.... 

 

1.      매일 아침 모든 변호사들에게 점심 공지메일을 돌린다. "오늘 식당은 뫄뫄입니다. 참석하실 분은 예약을 위해 회신해주세요."

 

2.      참석할 사람들이 - 거의 100% 파트너만 참석 답장을 한다 - 답장을 한다.

 

3.      참석자 리스트를 만든다.

 

4.      인원 수에 맞춰 식당예약을 한다.

 

5.      점심시간이 되면 인원 확인을 하고, 모인 파트너 분들을 식당으로 인도한다. (안나오신 분에게는 전화를 걸어 독촉하거나 전화도 안받으면 직접 찾아가서 모셔온다)

 

6.      숟가락, 젓가락, 냅킨을 놓고 물을 따르고 파트너들의 주문을 받는다.

 

7.      밥이 늦게 나오면 식당 종업원에게 독촉을 한다. 정자세로 앉아있다가, 파트너 변호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친다. (1년차 변호사니까요...)

 

8.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하여간 밥을 먹는다.

 

9.      본인 카드로 계산을 하고 회사에 사후청구한다.

 

10.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커피 마시러 가자~" 하면 카페로 가서 또 파트너들의 주문을 받는다.

 

11.   커피 계산을 하고, 파트너들 앞에 또 정자세로 앉는다.

 

12.   진동벨이 울리면 총알같이 튀어가서 음료를 가져온다. 각자의 주문에 맞게 음료를 앞에 놓아드린다.

 

점심총무의 고충...

당연히 점심총무에게는 여러가지 고충이 있다. 

 

1. 식당 예약하기 

Ÿ   전날 회식을 했다면 국밥집이나 설렁탕집으로 예약하는 건 센스다. 한 곳을 너무 자주 예약하는 것도 파트너들은 싫어하신다.

 

Ÿ   오피스 타운에 있는 식당 중에는 점심 때 예약을 안 받는 데도 많다. 로펌으로부터 예약 안 받아도 점심 때는 손님이 많이 몰리거든. 그래서 예약을 받아주는 식당 10군데 정도를 미리 섭외해서 평소에 인간관계를 잘 맺어두어야 한다.

 

Ÿ   우리 회사에 국한된 얘긴데, 1인당 만 원이 넘는 식당은 예약에서 제외다. 우리 회사 변호사들의 점심 식대는 만 원까지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만약 인당 만 원이 넘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면 그 차액은 높으신 파트너가 부담하게 되므로, 어쏘들은 당연히 알아서 만 원 이하의 곳으로 식당을 정해야 한다. 9,500, 9,800원 이런 곳...

 

Ÿ   이렇게 예약을 받아주는 곳 + 만 원이 넘지 않는 곳의 리스트는 선배 어쏘들로부터 1년차 변호사들에게 전해진다.

 

맨날 국밥집, 한식집, 중국집 다니는 게 지겨워서 (특히 오피스 타운에는 맛집도 많은데!) 피자집이나 버거집을 예약하기라도 하면, 다들 한 마디씩 하신다. "우리 뫄뫄 변호사가 새로운 데를 시도했네? 그래, 요새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좋아하지." ' '핫... 네...'

 

 

우리 회사가 이렇... 아, 아닙니다.

 

 

그렇게 리스트는 10군데 남짓만 살아남게 된다.

 

Ÿ   오늘은 어디로 갈지 정하기 어렵다면, 중국집이 무난하다. 중국집으로 선정하는 날은 참석 회신이 많이 온다.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다.

 

 

네? 탕수육은 안시켜주신다고요?

 

 

2. 참석자 분들 모셔오기 

l  점심 시간이 되면 다들 모이셨는지 체크를 한다. 오신다고 회신하셨는데 안나타나신 분이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전화를 안받으시면 직접 찾아가본다.

 

l  안오신 분 찾으라, 이미 모이신 분들을 기다리게 할 순 없다. 파트너들께 알아서 식당으로 가시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대체로 1년차 어쏘 두 명 정도가 짝을 지어서 한 명은 안 온 분 찾으러 가고, 다른 한 명은 이미 모인 분들을 식당으로 안내한다.

 

l  특히 초초초 높으신 파트너가 참석하는 날이면, 그 분의 사무실 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직접 모시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점심총무가 2명 이상 필요하다.

 

l  만약 초초초 높으신 파트너가 나타나셨는데 그 날따라 참석자가 적다면, 그 파트너께서 오늘 기분이다! 며 갑자기 고급 레스토랑을 쏘신다고 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점심총무는 긴급히 식당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꾸 예약을 취소하는 일이 생기면 그 식당에선 더 이상 예약을 안받아줄 수도 있기 때문에 어쏘 입장에서는 고급 레스토랑 가는 게 그렇게 반갑지는 않다. 게다가 고급인 식당일 수록 식사시간이 길어져서 빨리 회사 들어가서 일 해야 하는 어쏘 입장에선 마음이 불편하다. (차라리 빨리 먹고 빨리 일어나는 설렁탕집 같은 데가 마음 편함)

 

 

3. 식당에서 주문, 식사, 계산하기 

Ÿ   , 이제 식당에 왔다. 테이블 세팅 기본, 주문 받아 주방에 전달하는 것 기본, 밥 늦게 나오면 재촉하는 것 기본.

 

Ÿ   파트너 분들은 왜인지 식사를 굉장히 빨리 하신다. 그 속도에 맞춰 밥 먹는 것도 기본이다. 앞에 어르신들 다 드시고 이쑤시고 있는데 어쏘 혼자 숟가락질 하고 있으면 매우 눈치보인다.

 

Ÿ   계산은 점심총무가 자기 카드로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아 회사에 제출한다. 이때 참석자 명단을 정확히 적어내야 어쏘 개인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 만약 5명이 식사해서 5만 원을 결재했는데, 어쏘가 한명을 누락한다면, 그 어쏘는 4만 원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그래서 어쏘는 파트너들 얼굴과 이름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메일 회신 안하신 분이 점심모임에 갑자기 참석하는 경우도 있고, 회신 했지만 불참하는 분도 있고 해서.

 

Ÿ   내 동료들은 1년 차때 신용카드 실적을 많이 쌓았다. 한끼 식사에 10만 원 쯤씩 긁으면 뭐 실적 쭉쭉 올라가겠죠?

 

 

4. 커피 타임~

Ÿ   밥을 다 먹었으니 커피를 마시러 간다.

 

Ÿ   이미 밥 값으로 인 당 만 원 가까이 썼으므로, 더 이상 어쏘 카드를 쓸 수는 없다. 한 파트너가 카드를 주시면서 "난 아메리카노~" 하시면서 자리에 가 앉으신다. 그러면 다른 파트너분들도 "난 라떼~"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외치시며 다들 자리에 가 앉으신다.

 

Ÿ   점심총무는 다 기억해두었다가 받은 카드로 주문을 한다. (점원이 무슨 사이즈요? 아이스요 아님 뜨거운 거요? 물어보면 해당 파트너께 찾아가 다시 물어야 하는 일이 생기므로 파트너가 주문하실 때 미리 사이즈와 온도를 확인하자.)

 

 

사실 식후 커피는, 파트너들은 분위기나 습관 때문에, 어쏘들은 수혈 받기 위해 마시는 것 같다. 

 

 

 

Ÿ   만약 아까 밥을 먹은 식당에서 차액이 생겼다면, 그 차액만큼은 카페에서 어쏘 돈으로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10명이 모여 각자 9,500원 짜리 식사를 했다고 치자. 회사에서 지원하는 식대는 10명에 10만 원이다. 그러면 5,000원이 남는다. 어쏘는 남은 5,000원을 카페에서 써야 한다.

 

 

이런 어쏘들의 고충 때문에 로펌에서는 점차 점심총무 문화가 약해져 가는 분위기인 것 같다. 같은 로펌이라도 팀 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점심총무가 계속되는 팀도 있고 아닌 팀도 있다.

 

점심모임은, 불편한 점도 있지만 파트너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혼자서라면 안 갈 법한 식당들을 탐방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해서 활용하기에 따라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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