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인 패션과 딱 정석인 패션에 이어서, 로펌 변호사가 입기에는 약간 애매모호한 패션도 있다.
전도연 배우님,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이 맡은 역할을 좋아해서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고 싶진 않은데, 하필 이 드라마에서 전도연님이 입고 나오는 의상에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네예 ㅜㅜ
재판 중인 전도연은 흰 트렌치코트에 칼라 달린 흰색 블라우스, 검정 스커트를 입고 있다. 로펌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차림이었다면 문제 없는 패션이다. 하지만 법정에 출정하는 차림으로서는 좀 어색하다.
정장을 입은 건데 뭐가 문제야?
정장이라고 해서 다 오케이인 것이 아니다. 법정에서, 회의실에서는 코트는 벗고 자켓은 입는 것이 룰이다. 재판하러 법원에 왔을 때, 변호사들은 대체로 법정 밖 복도에서 미리 코트 (트렌치코트이든 겨울 외투이든) 를 벗어 들고 들어간다. 법정 안에서 코트를 벗느라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면 주목 받기 때문이다.
로펌 변호사들이 택시보다 회사 차량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겨울에 한 손에는 무거운 겨울 코트 결쳐들고, 다른 한 손에는 기록이 든 가방을 들고 법정에 들어가, 코트와 가방을 내려놓고 주섬주섬 기록과 펜을 꺼내드는 건 여간 거추장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코트 정도는 미리 차에 두고 내리는 게 편하다.
어쨌거나 회의 할 때나 재판 할 때에는 코트는 벗고 자켓은 입어야 한다. 변호사가 난방이 고장난 것도 아닌데 코트 입고 앉아 있으면 보기에 정말 어색하다. 마치 모자 안 벗은 느낌...? 자켓 없이 셔츠만 입고 있는 것도 (일단은 법정에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예의에 어긋난다.
한번은 회사 안에서 1년차 여자 변호사님과 파트너 변호사님이 재판하러 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1년차 변호사님이 자켓 없이 네이비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걸 본 파트너 변호사님이, "뫄뫄 변호사, 자켓 없어?" 하시면서 방으로 돌려보내셨다. 자켓 입고 나오라고.
위에서 전도연님이 흰 트렌치코트에 자켓 없이 흰 블라우스, 검은 정장 스커트를 입고 있는 것은 그래서 어색하다. 신입 변호사 역할이라서 그렇게 나왔을 수도 있지만, 동행한 파트너 변호사님이 있었다면 옷차림 코치를 하셨을 수도 있다. 오히려 옆에 앉은 의뢰인이 더 변호사 차림 같음.
그 다음 컷에서도 마찬가지다. 네이비 정장 원피스는 그 자체로는 오피스 웨어로서 손색이 없다. 이런 옷은 회사에서 회의할 때 입어도 괜찮다. 하지만 역시 법정에서는 (나만의 기준인지는 몰라도) 자켓이 없어서 좀 적절하지는 않게 느껴진다.
전도연처럼 입고 재판하시는 변호사님들도 보긴 봤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약간 자유롭게 입고 나타나시는 분들은 로펌 소속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금감원 같이 공적기관을 대표해서 출정한 사내 변호사님들은, 회사 내 드레스 코드가 로펌 보다는 융통성이 있어서 그런지 좀 더 융통성 있게 입으신다는 인상이었다.
사족으로, 변호사 옆에 앉는 의뢰인의 차림에도 제약이 있다. 그냥 민사 재판에서 당사자로서 원·피고석에 앉을 때에도 왠만하면 갖춰입고 나타나는 게 좋다. 그게 재판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혐의를 받아 기소된 피고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범죄자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면 격식있게 입는 게 무조건 본인에게 좋다.
전도연님 옆에 앉아 있던 팔 다친 의뢰인의 패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분은 중절모에, 하와이안 셔츠에, 와인색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중절모와 깔맞춤 (그래도 자켓은 걸쳤네예.) 직업이 사무직이 아닌 분들은 정장을 입을 일이 없으므로 그냥 단정하게 평상복을 입으시면 된다. 재판부도 다 이해한다. 하지만 직업이 로펌 파트너 변호사인데, 게다가 피고인 신분인데 하와이안 셔츠 입고 나타나서 모자도 안벗으면 적당한 차림은 절대 아니다.
저 분이 엄청 괴팍하고 제 멋대로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일부러 의상팀이 저렇게 입힌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 의뢰인이 평소에 회의할 때도 하와이안 셔츠 입고 오고 엄청 나대는 성격이라면, 재판 전에 미리 강력하게 조언을 할 것 같다. 제발 재판 때는 점잖게 입고 오시고 제가 사인을 드리기 전에는 말씀을 삼가시라고.
굿와이프 팀에게 미안하므로 이제 다른 예도 살펴보자. '슈츠'의 박형식은 운동화를 신는 것만 빼면 항상 칼정장을 입으므로 매우 양호하다.
박형식은 완벽한 거 아니에요?
색깔만 빼고. 브라운 빛이 도는 밝은 쥐색이나 밝은 블루 컬러 정장은 로펌 안에서는 좀 튄다. 로펌 드레스 코드는 무척 보수적인 편이라서, 남자 변호사님들 중에 검은 와이셔츠를 입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십중팔구는 흰 와이셔츠+어두운 색 정장+갈색 아닌 구두를 착용한다.
그래서 검은 정장 일색인 회사 엘레베이터 안에서 박형식을 보았다면, 확실히 튀긴 할 것 같다. 내 눈에는 박형식 같은 변호사님이 우리 회사에 있다면 '되게 패셔니스타시다~' 하면서 부러워했을 것 같은데, 로펌 자체가 워낙 튀면 안된다는 분위기이다 보니, 변호사들 스스로 밝은 색 정장은 꺼려 한다.
박형식이 입은 것 같은 조금 밝은 색 정장은 금요일 같이 약간 분위기가 가벼울 때, 연휴 직전에 (즉 파트너 변호사님들 많이 안 계실 때)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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